충남 부여 가볼만한곳 정림사지, 백제의 뛰어난 솜씨가 담긴 오층석탑이 있는 사비성 한복판의 절터

 도심 속 멈춰버린 시간, 단아한 석탑이 건네는 위로


1. 시끌벅적한 시장통 끝에서 만난 뜻밖의 평온, 정림사지

부여 시내 한복판, 사람 냄새 나는 시장통과 현대적인 건물들 사이를 걷다 보면 갑자기 시야가 탁 트이며 드넓은 잔디밭이 나타납니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정림사지'입니다. 처음 이곳에 발을 들였을 때의 기분은 참 묘했습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차 소리와 사람들 소리가 들리는데, 정림사지 안쪽은 마치 다른 세상인 것처럼 고요했거든요. 화려한 전각이나 기와지붕은 세월 속에 사라지고 이제는 빈터만 남았지만, 오히려 그 '비어 있음'이 주는 장엄함에 한동안 멈춰 서서 숨을 고르게 되더군요. 1,500년 전 사비 백제의 심장이었던 이곳은 여전히 묵직한 존재감으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도심속 다른 세상에 와 있는, 시간을 거스른 듯한 곳입니다.

충남 부여 정림사지
< 부여 정림사지 >

2. 석탑의 교과서,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마주하다

잔디광장 한가운데, 하늘을 찌를 듯 서 있는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실제로 보니 사진으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우아했습니다. 신라의 탑들이 견고하고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정림사지 탑은 부드러운 곡선미가 돋보이는 여성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특히 처마 끝이 살짝 치켜 올라간 옥개석의 라인을 보고 있으면, 돌로 만든 탑인데도 마치 금방이라도 나비처럼 날아오를 듯한 경쾌함이 느껴지죠.

탑 아래서 유심히 살펴보니 1층 몸돌에 당나라 소정방이 새겼다는 비문이 희미하게 보였습니다. 백제를 멸망시키고 제 전공을 자랑하려 새긴 글귀라는데, 그 아픈 상처마저 묵묵히 견디며 이 자리를 지켜온 탑의 모습이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탑의 외형이 지나온 시간을 말해주는 듯 합니다.

충남 부여 정림사지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3. 투박해서 더 다정한 석조여래좌상의 미소

석탑 뒤편으로 걸어가면 강당 터 안에 모셔진 '석조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랜 세월 비바람에 마모되어 얼굴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오히려 그 뭉툭하고 투박한 모습이 동네 할아버지처럼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화려한 금칠을 한 불상보다 훨씬 더 자비롭고 온화해 보인달까요?  처음엔 어떤 모습이였을까 궁금해집니다. 불상 앞에 잠시 서서 눈을 감으니, 이 거대한 절터를 가득 메웠을 백제인들의 불심과 기원이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비록 건물은 사라졌지만, 이 불상의 미소만큼은 변치 않고 이곳을 지키며 찾아오는 이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있었습니다.

충남 부여 정림사지
< 부여 정림사지 석조여래좌상 >

4. 과거를 현재로 불러오는 정림사지 박물관

절터를 충분히 거닐었다면 입구 쪽에 있는 '정림사지 박물관'은 필수 코스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박물관 내부의 미디어 아트 공간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캄캄한 방 안에서 벽면 가득 펼쳐지는 백제의 가람 배치와 석탑의 건축 원리를 보고 있으면, 머릿속으로만 상상하던 정림사지의 옛 모습이 화려하게 부활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온다면 석탑이 어떻게 조립되었는지 디지털로 체험해 볼 수 있어 역사 공부가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박물관을 보고 다시 밖으로 나와 절터를 바라보면,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층층의 깊이감이 느껴지실 겁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다녀온 것만 같습니다.

충남 부여 정림사지
<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 >

5. 여백의 미가 가득한 사비의 아침을 걷다

정림사지는 화려한 볼거리로 채워진 곳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는 빈 마당을 가로질러 석탑 앞에 서는 그 과정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여행이 됩니다. 도심 속에 이런 거대한 '비움의 공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다행인지 모릅니다. 굽이굽이 흐르는 백마강의 물결처럼 단아하고 절제된 백제의 미학을 단 하나의 유물로 확인하고 싶다면, 주저 없이 정림사지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노을이 질 무렵, 석탑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시간에 방문해 보세요. 그 그림자를 따라 걷다 보면 1,500년 전 사비 백제의 꿈이 여러분의 발끝에 닿아있음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조용하고 외진곳보다 가까운 곳에서 역사를 둘러 보고 싶다면 부여 정림사지 방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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